'벤허' 감상문
양수랑 2018. 1. 2.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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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MGM사가 제작, 윌리엄 와일러가 감독하고, 찰튼 헤스턴이 주연한 [벤허(Ben-Hur)]를 보았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상영한 것은 아마 1960년 이후일 것이니, 우리가 십대의 끝자락이었을 때 당시에는 70mm의 대형 화면으로 보았으니 너무 놀랍고 감동적이었다고 기억된다. 그렇지만 생각해 보면 그때의 감동을 돌이킬 수 없고 그냥 스펙터클한 전차 경주 장면만 기억에 남아 있을 뿐이고, 더구나 줄거리 같은 것은 가물가물하여 생각이 나지도 않았는데 이번에 열일을 제치고 비록 공짜 영화였지만 독하게 마음먹고 끝까지 버티고 앉아 그 젊었던 시절의 감동에 이어 두 번째 감동을 체험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 영화는 당시의 필름을 유투브(디지털 영화)로 다시 떠서 상영하니까 대형화면으로 보았던 박진감이나 동시녹음에 의한 입체적 음향감은 다소 떨어진 느낌이었다.
프롤로그(prologue, 序幕)
ANNO DOMMI(紀元年, 예수의 탄생년, 학자들은 예수의 탄생년을 기원전 4년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로마황제가 지배하는 지역에서는 14년마다 인구조사를 하게 되는데, 규칙이 자기 고향으로 가서 신고하도록 되어 있었다. 나사렛에 사는 목수 요셉도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가서 인구 조사에 응하게 되었다. 따라서 그 해 12월 말쯤 베들레헴에 도착한 요셉은 인구조사를 받으러 온 사람들로 인해 여관을 구할 수 없어서 어느 마구간에서 잠을 자야 하였다. 당시 이 지역사람들은 구세주가 나타나 로마의 억압에서 구해 줄 것이라는 예언을 믿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 밤, 별빛이 인도하는 곳 -요셉이 잠을 청하던 마구간- 에서 요셉의 아내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낳았고, 동방박사 역시 별빛의 인도로 아기 예수 앞에 나아가 그의 탄생을 축하해준다.
ANNO DOMMI 26(기원 26, 예수 26세)
로마가 지배하는 베들레헴에는 유대인 귀족 왕자이며 부호인 ‘벤허’가 어머니와 여동생을 가족으로 두고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이 지역에 신임 총독이 부임하게 되었다. 총독의 부임에 앞 서, 로마로부터 주둔군 사령관으로 ‘메살라’가 군대를 이끌고 이곳에 도착하였다. 메살라는 소년 시절 아버지가 이곳 총독이었을 때, 벤허의 집을 드나들면서 형제처럼 지냈던 죽마고우였다. 두 사람은 이제 성년이 되어 옛날의 우정을 다시 나눌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벤허의 가족을 방문하여 환영을 받았고, 특히 혼기가 찬 여동생은 그를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보기까지 하였다.
그런데 만나자마자 두 사람은 꿈 많던 옛날의 소년들이 아니었다. 이제는 한 사람은 로마황제에게 충성을 맹세한 군대의 사령관이요 출세욕에 불탄 철저한 정복자의 우두머리가 되었고, 다른 한 사람은 정복자들을 쫓아내고 질곡에 빠진 동족을 구해야 한다는 소명을 받은 유대민족의 지도자로 성장하여 만나게 된 것이다. 따라서 두 사람은 우정을 나눌 새도 없이 메살라는 벤허에게 자기를 도와 주둔지역의 평온을 유지하고 저항하는 세력을 발본색원하여 서로 영광을 누릴 수 있게 하자고 요구한다. 이에 대해 벤허는 친구를 위해 자기 민족을 배신할 수 없음을 주장하면서 그의 요구를 거절한다. 다시 한 번 메살라는 벤허에게 적이 될 것인가 친구가 될 것인가 양자택일 하도록 요구한다. 그렇다면 벤허의 선택은 유대민족을 위해 적이 되겠다고 대답한다.
신임 총독이 도착하는 날, 벤허의 집 옆을 지나가던 총독이, 여동생 티르자의 실수로 허름한 지붕 기왓장이 쏟아져서 총독이 위해를 입는다. 벤허가 지붕의 기왓장이 떨어진 것은 고의가 아니고 사고였음을 친구 메살라에게 호소하면서 자신을 처벌하고 가족들의 선처를 부탁하였지만, 그는 이 일을 빌미로 벤허와 그 가족에게 무서운 죄를 덮어씌운다. 어머니와 여동생은 감옥에 갇히고, 벤허는 이곳에서 먼 곳의 노예로 추방되어, 살아서는 돌아올 수 없다는 겔리선(노예들이 노를 저어 운항하는 군함선)을 타게 된다. 메살라의 의도는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로마황제에게 저항하면 철저하게 보복을 당하고 절대로 용서받을 수 없다는 본보기를 저항 세력에게 교훈으로 보여 주기 위함이었다.
겔리선에서 4년째를 보내는 동안 수많은 노예들이 물속에 수장되었지만, 벤허는 용케도 지금까지 살아남아 있었다. 이번에 이 겔리선을 지휘하는 선장은 로마 귀족 집정관 ‘퀸터스 아리우스’였다. 노를 젓는 노예들은 모두 사형수로서 도망하지 못하도록 두 발목이 쇠사슬로 묶여 있었고, 전투가 시작되면 바닥과 쇠사슬을 연결하여, 노를 잡고 계속 저어야 하고 침몰하면 그대로 배와 함께 수장되는 것이 그들의 운명이었다.
아리우스 집정관의 마음에 든 벤허는, 이 겔리선에서 빼내어 로마로 가서 자기가 양성하고 있는 검투사가 되지 않겠는가를 제안 받는다. 이 죽음의 겔리선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지만, 벤허는 그럴 수 없고, 자기는 꼭 살아나가서 억울하게 감옥에 갇힌 어머니와 여동생을 구할 계획이라면서 그 때까지는 꼭 살아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드디어 적선을 만나 전투가 벌어졌다. 아리우스 집정관은 벤허에게만 쇠사슬을 풀어주도록 명한다. 혹시라도 배가 침몰했을 때 살아나 탈출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해전에서 승리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은 엄정한 군율과 잘 훈련된 전술로 적선에 근접하여 적선의 노를 꺾어버린 다음, 무력해진 적선의 뱃전에 충돌하여 적선을 침몰 시키는 것이다. 아리우스의 전술도 그러하였다.
이 해전 장면에서, 우리 이순신 장군의 전술이 생각났다. 이순신 장군은 사수(射手) 포수(砲手) 노군(櫓軍, 노꾼) 중, 노꾼을 제일 중요시하여 가장 많이 훈련 시켰다. 우리 수군의 희생을 최소화하려면 최상의 훈련으로 피해를 줄이는 전술이어서 희생이 큰 근접전을 피하고 여러 가지 함포를 멀리서 공격하여 적선의 기동력을 무력화 시킨 다음에, 빠른 속도로 근접 충돌시켜 적선을 침몰 시키고 적을 섬멸하는 전술이었기 때문에 전투가 끝난 다음에도 아군의 피해는 한 두 명의 희생으로 끝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전술을 가능케 한 것은 우리 수군의 함선인 판옥선의 구조였다. 배 밑이 둥글고 펑퍼짐하여 양쪽 뱃전에 배치된 노꾼들을 잘 훈련시켜, 노를 젓는 방식에 따라 제자리 회전, 전진, 후진 등 전황에 따라 적절한 훈련을 시켜 놓았고, 아울러 윗층에 배치된 함포에서는 좌현과 우현이 각각 포사격 준비를 한 다음, 좌현이 먼저 목표물을 공격한 후, 판옥선이 제자리에서 180도 회전하여 화약과 포탄을 채우고, 다음에는 우현에서 불을 뿜고, 또 화약과 포탄 장착이 끝난 좌현이 제자리에서 180도 회전하여 목표물에 불을 뿜게 되는, 당시로서는 연발포가 없던 시절에 우리 판옥선은 연발포 사격이 가능하였으므로 모든 해전에서 백전백승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전술은 이순신 장군이 개발한 전술이어서 세계 해전 사에서 가장 먼저 연발포 사격으로 제해권을 확보함으로써 1592년 조일전쟁(임진왜란) 때, 일본의 침략으로부터 우리 조선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도 당시 열악한 전투 환경과 죽음에 대한 불안감으로 우리 수군에서도 도망자가 많았지만, 이순신 장군의 수군부대에서는 도망병보다 오히려 목숨을 지키려고 이순신 장군의 부대에 합류하는 자가 더 많았던 사실에서도 증명된다.
벤허가 탄 함선이 적함의 충돌로 파괴되어 물이 들어 왔는데, 아리우스 집정관의 배려로 쇠사슬이 풀린 벤허는 자유로운 몸으로 쇠사슬 열쇠를 획득하여 동료 사형수들의 쇠사슬을 모두 풀어주었다. 노예들은 서로 살기 위해서 덤벼드는 적의 병사들과 목숨을 걸고 싸웠고, 벤허는 이 와중에 위기에 빠진 아리우스 집정관의 목숨을 구하게 되었다. 대승을 거둔 아리우스 집정관이 개선하여 로마 황제 앞에 전쟁 영웅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벤허의 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로 인해 벤허는 사면 받고 아리우스의 양자로 귀족이 되었고 부와 명예를 누릴 수 있게 되었지만, 벤허는 양부의 곁을 떠나 베들레헴으로 돌아갈 것을 결심한다.
벤허는 어머니와 여동생을 구하려고 베들레헴으로 가다가 ‘세이크 일더림’이라는 상인을 만난다. 그는 뒤에 벤허가 참가하는 전차 경주의 후원자로, 좋은 경주마를 키워두었다가, 벤허에게 이 경주마를 몰고 전차경주에 출전하도록 하는 후원자가 된다. 일더림은 메살라에게 접근하여 전차경주의 승리자에게 4배의 배당금을 주기로 약속함으로써 판을 키우고 결국 메살라와 벤허가 동반 출전하여 경쟁하도록 계략을 꾸미기도 한다.
전차 경주가 열리는 결전의 날, 로마황제를 대신한 베들레헴 총독의 주제로 9명의 기수가 모는 전차 경주대회가 원형 경기장에서 열렸다. 그런데 메살라는 참가자들과 다른 그리스전차를 타고 출전하였다. 그리스전차는 바퀴축이 특이하였다. 바퀴의 축에서 돌출해 나온 날카로운 쇠 톱니가 달리고 있는 다른 전차의 전차 바퀴에 들어와 마찰을 일으키면 바퀴살이 모두 부서져 전차가 파괴되고 기수가 상해를 당하고 죽음에 이를 수 있는 무서운 흉기인 것이다. 메살라는 이 그리스전차로 동반 출전한 기수들을 탈락시킬 목적을 가진 것이다. 메살라의 술수에 벤허가 걸려들 수도 있는 것이어서 벤허의 후원자 일더림이 벤허에게 특단의 주의를 준 것이다.
원형경기장을 10바퀴 돌도록 한 전차 경주는 실제로 10분 이상 전개된다. 아마 지금까지 제작된 모든 영화들 중에서 이런 상황을 촬영하여 상영된 것은 이 영화가 처음일 것이다. 메살라의 접근으로 전차들이 나뒹굴고 기수가 말발굽 아래 짓밟히는 긴박한 상황들이 연달아 벌어지면서 아홉 바퀴를 돌았을 때, 이번에는 메살라의 채찍이 벤허를 공격하였고, 메살라의 채찍으로 살갗이 갈라진 벤허가 그와의 채찍 싸움에서 이겼고, 오히려 메살라는 전차에서 튕겨져 나와 말발굽 아래 몸을 뒹굴고 만신창이가 된다. 벤허는 우승하여 베들레헴 시민들의 영웅이 되고 신의 반열에 오른다. 죽음의 문턱에서 고통 받고 있던 메살라는 자기를 찾아 온 벤허에게 우리의 경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너의 가족은 죽지 않았으며 문둥병으로 죽음의 계곡에 버려져 있음을 알려 주어 벤허를 고통과 슬픔 속으로 빠뜨린다. 보편적 인간은 대부분 어떤 피할 수 없는 이유로 악업을 쌓았더라도 죽음 앞에서는 양심을 되찾아 속죄하고 참회하는 것이 상례인데 악의 화신인 메살라는 죽어가는 순간에도 끝까지 적대감을 가지고 벤허를 고통의 구렁텅이로 빠뜨리며 죽어 간다.
벤허는 허둥지둥 문둥이 계곡으로 가족을 찾아 나선다. 거기에서 사랑하는 옛 여인 에스더를 만난다. 그 동안 에스더는 이곳 문둥이 계곡으로 찾아와서 벤허의 어머니와 여동생에게 먹을 음식과 옷가지를 가져다주어 보살펴 왔던 것이다. 벤허는 어머니와 여동생을 집으로 데리고 가려 하였지만 본인들의 강력한 거부로 대면조차 못하고 베들레헴 집으로 돌아온다.
새로 부임해 온 후임 총독은 벤허의 양부 아리우스의 친구였다. 벤허에게 로마의 집정관이 된 양부 아리우스의 전갈을 전한다. 벤허가 로마 시민이 되었으니 어서 로마로 돌아올 것을 당부한 것이다. 벤허는 문둥이 계곡에 있는 가족을 두고 로마로 갈 수 없다고 거절한다. 그러자 총독은 양부의 친구로서 충고한다면서 벤허에게 유대를 떠날 것을 명령한다. 벤허는 이제 유대민족의 영웅이요 신처럼 추앙 받는 인물이 되었기 때문에 황제에 저항할 위험한 존재이니 미연에 싹을 자르기 위해서 그를 추방하려는 것이다.
다시 문둥이 계곡으로 간 벤허는 그의 가족을 보살피려고 먼저 와 있는 에스더를 만난다. 그리고 함께 이곳을 떠날 것을 거부하는 어머니와 여동생을 억지로 데리고 베들레헴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황제에게 불복한 죄로 로마군사에게 잡혀와 사형장으로,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의 언덕을 올라가는 한 사네를 본다. 쓰러져 고통을 당하고 있는 그 사네에게 다가가서 보니 그 사람은, 벤허가 수년 전 노예선으로 끌려갈 때, 나사렛의 요셉의 집 앞에서 쓰러진 자기에게 물바가지를 건네 준 사람이었다. 이번에는 벤허가 그에게 물이 담긴 바가지를 건네었다. 그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때 동방박사는 벤허에게 말했다.
“저 사람이 33년 전 베들레헴의 마구간에서 태어났고, 우리의 죄를 대신 지고 죽기 위해 이 세상에 온 사람”
이라고. 그렇게 예수가 죽자. 온 천지가 깜깜해 지고 천둥이 치더니 끝내 비가 쏟아지면서 에스더와 함께 비를 맞으며 집으로 가던 어머니와 여동생이 고통 속에 빠져 들었다. 비가 그치자 두 사람은 마침내 고통이 끝나고 마음의 평정을 찾으면서 문둥병의 흔적은 완전히 사라지고 옛날의 모습으로 되돌아 왔다.
벤허가 집으로 돌아오니 사랑하는 여인 에스더가 반갑게 맞이한다. 에스더를 품에 안은 벤허가 예수의 죽음 현장에서 들었던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소서! 저들은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를 모릅니다.”
“그 목소리가 내 손에서 칼을 뺏었다.”
고 말한다. 그리고 깨끗이 나은 어머니와 여동생을 만난다.
벤허는 이제 푸른 초원에서 양 때를 몰며 목자로 살아간다. 로마군대는 물러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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