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

영화 '화장'

양수랑 2015. 4. 19. 22:54

2015년 4월 11일(토)

오늘은 아내가 일이 있어 혼자서 영화를 보러 갔다.

 

영화가 시작되었는데도 깜깜한 속에서 어떤 여인들이 잡담을 하니까 영화에 몰입이 늦어져서 한 소리 했다. “말 좀 하지 맙시다.”

 

상여 나가는 장면부터 영화는 시작된다. 죽음이 주제인가? 영화 제목인 화장(化粧)은 살면서 잘 보이기 위하여 하는 행위이다. 죽음의 행렬이 먼저 나온 것은 어떤 메시지를 주는 것이 분명하다. 이 죽음의 행렬이 간 곳은 바로 화장장(火葬場)이었다. 우리는 살면서 누구나 자신을 돋보이기 위하여 화장(化粧)을 하면서 산다. 그리고 잡다한 삶을 살다가 마침내 죽음에 이르러 화려한 꽃상여를 타고 화장장(火葬場)으로 가서 자신의 최후를 마치게 된다.

주인공인 화장품 회사 오상무(안성기)는 수년 동안 뇌종양 환자인 아내(김호정)를 정성껏 돌본다. 낮에는 간병인을 쓰고 밤에는 몸소 아내 간병을 한다. 낮에 근무 중에도 위중한 상황이 발생하면 아내에게 달려가서 위급상황을 해결한다. 한 편 자신도 전립선 비대로 오줌을 제대로 못 누니 가끔 병원 신세를 질 때가 있다. 자연히 아내의 밤 간병을 하게 되니까 항상 피곤한 상태로 회사 근무를 한다.

그런 와중에도 깐깐하기 짝이 없는 성격 탓에 화장품 매출의 생명인 마케팅담당 상무로서 부하 직원들의 도움으로 업계에서 독주에 가까운 실적을 올린다. 때로는 부하직원이 병원 휴게실까지 결제를 받으러 찾아온 일도 흔한 상황이다. 오상무의 결제 없이는 어떤 광고 기획도 추진할 수 없을 만큼 회장의 절대적 신임을 받고 있는 터이다.

어느 날 마케팅부가 추진한 광고기획이 대박을 터뜨려 매출을 급신장시키고, 상금으로 받은 보너스로 마케팅팀 전원이 회식을 하는데, 아내 간병에 지친 몸이라 스르르 눈이 감긴다. 그런데 직원들의 춤판이 벌어지고 모두들 화려한 몸짓으로 춤을 추는데 추은주(김규리) 대리의 뇌쇄적인 몸짓에 눈이 번쩍 뜨이고 그녀에게서 눈길을 거둘 수가 없다. 파티가 끝나고 추대리는 상으로 받은 와인을 오상무에게 주고, 오상무는 그 와인을 들고 밤길을 헤맨다.

중년을 넘기기는 하였지만 아내가 병상에 있으니 아직도 남자로서의 욕구를 억제하며 살지 않을 수 없다. 병든 아내를 변기에 앉히고 배설물을 처리하기 위해 팬티를 벗기고 아내의 하반신을 씻기는 오상무의 모습은 그냥 인간인 남편이 아니라 가히 성자(聖者)의 모습이었다. 이 장면은 리얼리즘의 극치였다. 그때 아내는 절규(絶叫)하였다. 당신의 마음속에는 누가 있느냐고……. 나도 궁금했다. 정녕 오상무의 마음속에는 아내, 추대리, 성자(聖者) 중에 누가 있었을까? 화장품회사의 마케팅 귀재인 오상무는 부하들의 존경과 신뢰를 한 몸에 받고 있으며, 회장님도 자신의 의견보다 마케팅 분야의 모든 결정권을 그에게 주고 있다. 또 딸이 아버지에게 묻는다, 언제 제일 힘들었느냐고, 그러나 아버지는 다른 말로 자신의 대답을 회피한다.

병이 약간 호전되어 아내와 단둘이 별장에 갔다. 아내가 불쌍한 남편을 위로 하려 남편의 손을 끌어다 젖가슴에 댄다. 아내가 일부러 남편의 동물적 욕망에 불을 댕기려 했지만 남편의 동물적 욕망은 살아나지 않는다. 아내의 몸뚱이 위에서 자신의 동물성을 살려내려고 끙끙대면서 오상무는 침대에 전라로 누워 흐느적거리는 추 대리의 벗은 몸을 상상한다.

아내가 죽었다. 장례식이 끝나고, 자기가 죽으면 보리(애완견)를 자기와 함께 보내달라는 아내의 유언을 실행하고, 별장으로 가 아내의 유품을 정리하고 있는데 추대리가 중국으로 떠나면서 뵙고 싶다는 문자를 보내온다. 오상무는 추대리의 문자도 전화번호도 다 지운다. 아내와 함께 보리도 보냈으니 추대리도 보내겠다는, 결코 미련을 갖지 않겠다는 결단이다. 그런데 갑작스레 추대리가 들이닥치니 오상무는 추대리가 택배로 보낸 와인과 함께 응접실 탁자에 두 개의 와인 잔으로 손님을 맞게 하고 집을 비운다.

하염없이 오상무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다, 탁자 위의 빈 와인 잔을 쓸쓸히 지키던추대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기가 타고 왔던 승용차에 올라 별장을 나오다가, 길을 따라 정처 없이 걷고 있는 오상무를 보았지만 그냥 지나쳐 가고, 오상무는 추대리의 떠남을 아랑곳하지 않고 하염없이 길을 따라 걷는다.

 

아내에게 자식들에게 회사의 일에 그리고 추대리에게 다 같이 충실한 오상무의 집중력 결단력과 절제력에 소름이 끼쳐졌다. 인생은 화장(化粧)으로 시작에서 화장(火葬)으로 끝나는 것일까? 무거운 마음으로 극장을 나왔다.